덕수궁 돌담길
애인 없어도 된다 ... 혼자 걸어도 좋은 서울 정동길에 덕수궁 돌담길 ........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 고종황제는 을사조약이 터지자 ,헤이그에 밀사를파견하다 ,일본에게 들통나
강제 폐위 당하고, 일본은 순종을 황제로 등극시킨다 .
일본은 고종에게 경운궁에서 건강하게 살라고 명한 것이 덕수라 하여,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게된 일이다.
황제만이 가운데 문으로 들어 갈수있고 , 신하나 왕족은 양측문으로 출입을 할수있다 ...
이길을 가족이나 , 연인과 함께 걸어 가정이 깨지고 , 국가가 망하면 어찌되는지 교육의 지표로 삼으면 좋겠다 .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당시의 원구단...... 일본은 이곳을 철거하고, 지금의 조선호텔을 지은 것이다 ...........
정약용선생은 경세유표 첫 글에서 , 지금의 정치를 바로잡지 않으면 반듯이 이 나라는 없어질것이니 , 정신차리라 한다 .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후 대안문을 , 지금의 대한문으로 변경한다 .
나라의 위엄을 상징하는 용의 문양 , 나라 망하고 다시 찾은 후에도 ,애들 미끄럼틀 장난으로 망가진 모습... 이러니 나라 빼기지 !
임금에게 배알할수있는 신분은 당상관 , 정3 품이상 만이 직접 말씀을 올릴수가 있었다
황제를 상징하는것은 용의 문양이다 ,
난로가 아님 정" 황제가 치세하는 곳 양측에 있어 왕권의 힘을 상징한다 . 전쟁에 패전국에서 상납하는 예이다 .
임진왜란후 선조는 나라 살림도 궁핍하고 , 단청칠에 자금이 많이 들어가니 " 근검 실천 " 본보기로 칠하지 않은 궁이다 .
좌측건물은 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신하들 자제들과 함께 유치원 형태로 공부한 장소
일본은 이씨조선의 황태자 , 황세자를 일본인과 결혼시켜 , 이씨조선의 씨를 없애는 정책을 펼쳐 근본을 없앤다 .
1904년 화재가 난 건물 , 원래는 2 층 , 화재원인 ? ? ? ? ~ 이곳에서 " 을사조약 " 까지 맺었으니 을씨년스럽다 한다 .
함령전 고종황제가 숨진장소 ( 저녁에 동치미 , 식혜를 드셨는데 ) 얼굴이 부페되 독살로 추정 , 3.1 운동이 시작되였다
유현문 늦게 보게된 덕혜옹주를 위해 문을 만들고 ,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하여 유현문
해방후 아래의 석조전에서 한국을 미 , 쏘가 신탁통치하기로 결의한 장소
한국현대사에서 나라가 세워지고 , 여러 대통령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것을 보았다 .
중국 주은래 ,베트남의 호치민은 죽으면서 재산, 자식, 유언을 남기지 않은것으로 유명하다 .
이씨왕족의 마지막 황세자가 일본의 어느 호텔도 아니고 여인숙에서 쓸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때
우리모두, 정치권, 언론은 조용히 말이 없었고 . 국민의 한사람으로 부끄럽고 얼굴들기가 민망하였다 .
물 과 소금의 맛있는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