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게

[장어구이] 도쿄 백년 맛 집 이야기 이즈에이 혼텐

물과 소금의 맛있는 인생 2011. 4. 17. 00:46

도쿄 백 년 맛 집 이야기  이즈에이  혼텐

간장회사에서도 복제 실패한 장어구이 맛의 원천… ‘좌우상하’ 초월하는 단골들이 즐겨

 

 

» 식당에서 바라본 거리.

요리사는 조심스레 장어 꼬치를 집어 든다.

껍질이 잘 발라진 장어 한 마리가 두 덩이로 나뉘어 4개의 꼬치에 꿰어져 있다. 요리사는 숯불 바로 옆 항아리에 장어 꼬치를 적신다. 항아리에는 검붉은 액체가 가득하다. 장어구이에 맛을 낼 다레소스(일종의 양념소스). 다레소스에 재워진 장어 꼬치는 숯불 위에 오른다. 요리사는 부채질로 숯불의 화력을 조절한다. 요리사는 이런 식으로 앞뒷면을 고루 굽는다. 장어 살이 부스러질지도 몰라 직접 손으로 뒤집어야 한다. 이즈에이 혼텐(伊豆榮 本店)의 대표 메뉴인 가바야키(장어꼬치구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도쿄공습과 간토 대지진도 피해 간 행운


 

» 이즈에이 혼텐 내부 모습.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슬로푸드 운동은 지금 ‘맛의 방주’(The arch of taste) 사업을 벌인다. 산업화된 농업과 환경오염, 맛의 획일화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을 보존하자는 운동이다. 미식적으로 뛰어날 것, 지역과 관계될 것, 장인에 의해 만들어질 것 등 몇 가지 선정기준이 있다. 장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음식도 아니고 이즈에이 혼텐의 도이 가즈오(65) 사장이 정치적으로 딱히 올바른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300년 가까이 전통의 맛을 간직한 이즈에이 혼텐의 우나기 요리는 ‘맛의 획일화’라는 대홍수를 피해 방주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이달 1일 오후 3시 경 이즈에이 혼텐의 2층 객실. 도이 가즈오 사장의 재촉에 따라 먼저 장어덮밥을 맛봤다. 대대로 비전된다는 다레 소스는 짠맛과 단맛의 풍미가 좋았다. 기분 좋은 맛이라고 부를 만할까?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도쿄의 햇살에 비친 색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붉은색 그릇이 식욕을 자극한 탓이다.

이즈에이 혼텐은 18세기 중반 도쿠가와 요시노부 가문을 수행하던 하급 무사가 창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8대손인 도이 가즈오 사장도 정확한 연도를 모른다. 다만 도이 가문의 비석 비문을 통해 대략 260여 년 전으로 창업 시기를 추측할 따름이다. 에도 막부 초기에는 아사쿠사에 있었다. 그 뒤 현재의 우에노 연못 근처 포장마차로 이어졌다. 취재했던 시니세 대부분 2차 대전 당시 도쿄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이즈에이 혼텐은 예외다. 심지어 23년 간토(관동)대지진 때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즈에이 혼텐의 역사는 사위들의 역사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1대부터 5대까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었으나 6대부터는 딸과 결혼해 집안에 들어온 사위가 성을 바꿔 양자가 돼 가업을 이었다. 도이 가즈오 사장의 원래 이름은 사카와키 가즈오다. 그는 71년 결혼 뒤에도 한동안 사카와키란 성을 그대로 썼다. 사위로 들어와 성을 도이로 바꾸고 양자가 된 장인(7대손) 89년 “가업을 이어달라”고 하자 그제야 성을 바꿨다.

설명을 잇는 도이 가즈오 사장의 중 저음 말투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의 자신만만함이 느껴졌다. 깃이 없는 재킷에 흰 구두를 신은 외모도 예사롭지 않다. 젊은이가 아니면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노 칼라 재킷을 시도한 데서 도전정신이 엿보인다. 그런 도전정신 덕분인지 그가 사업을 떠맡았을 때 18명뿐이던 종업원은 현재 250여명으로 늘었고 지점도 1개에서 5개로 늘었다.

아들을 버리고 사위에게 물려준 장인

 

» 도이 가즈오 사장.

한 식당이 무려 260년 지속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능력 있는 자에게 가업을 잇게 한다는 이즈에이 혼텐의 가풍도 한 몫 했다. 도이 가즈오 사장의 부인에게는 다른 남자형제가 있었음에도 장인(7대손)은 사업 수완의 싹이 보였던 도이 가즈오에게 가업을 잇게 했다. 아들을 ‘버린’ 셈이다. 도이 가즈오 사장에게는 딸과 아들이 한 명씩 있다. 딸은 결혼해서 이미 아이가 넷이다. 도이 가즈오 사장은 “아들보다 사위가 낫다 싶으면 사위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고 잘라 말한다.

도이 가즈오 사장의 맛에 대한 철학은 완강하고 단순하다. “선대에서 해오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다레 소스를 바르는 방법부터 굽는 정도까지 선대부터 내려오는 방법을 충실히 따른다고 설명했다. 전통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다. 장어 집 주방에선 “꼬치 꽂는 데 3, 다레 소스 바르는 데 8, 굽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도이 가즈오 사장은 “우리 집 가훈은 요즘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의 맛을 바꾸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던 걸 유지하자는 것이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전통만 보고 식당을 찾지 않는다. “맛의 유행을 따라가면 장사는 더 잘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우리 집은 우리 집대로 우리 집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됐다. 유행을 따르면 우리는 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60년 된 맛의 비결은 불 조절인지, 다레 소스인지, 아니면 싱싱한 장어 원재료인지 물었다. 도이 가즈오 사장과 옆에 앉은 조리 장 나카야마 히데미쓰의 입에서 동시에 “다레 소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미 30년 넘게 함께 일하는 사이다. 이즈에이 혼텐의 비전의 다레 소스는 미림, 간장, 다마리 조유를 섞어 만든다. 다마리 조유는 간장의 하나로 성근 콩에 누룩을 섞어 만든 진간장이다. 설탕을 쓰지 않는 것도 원칙 중의 하나다. 일본 유수의 간장회사가 이즈에이 혼텐의 다레 소스를 분석했지만 똑같이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도이 가즈오 사장은 말했다. “그들이 와서 우리 다레 소스를 분석해보고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혀 아는 것과 다르다.” 도이 가즈오 사장은 장어구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독일 하면 훈제, 프랑스 하면 졸이는 음식, 가바 야키는 일본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가바 야키가 독일 훈제나 프랑스 요리와 같은 반열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독일에 훈제가 있다면 일본엔 가바 야키


 

» 장어구이.

이런 자부심이 아마 장어를 잘 먹지 않는 서양인들의 잡지 <미슐랭 가이드>에서조차 별 하나 레스토랑에 장어 집을 포함(지쿠요테이)시킨 힘일 게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전통을 돈 되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손님이 없으면 시니세는 존재할 수 없다. “기자 때려치우고 사업하게 돈 버는 비법을 알려달라고”고 묻자 도이 가즈오 사장이 껄껄 웃으며 “인맥이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손님은 ‘상하좌우’를 막론한다. 헤이세이 천황에게만큼은 도이 가즈오 사장이 직접 배달했다. 자민당의 숙적인 민주당도 싸움을 멈출 땐 둘 다 이즈에이 혼텐의 장어덮밥으로 식사를 한다. 우에노 지역에 한국인이 많아 한국 기업의 직원들도 종종 이즈에이 혼텐을 찾는다. 총련 소속으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재일동포 ㅇ아무개씨와 일본 파크 사이드 호텔 소유주로 제주지역 일간지 회장을 지냈던 고 ㄱ아무개씨도 도이 가즈오 사장의 단골이다. “인맥이 중요하다.” 아래 눈두덩에 주름잡히게 웃으며 도이 가즈오 사장은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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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연락처 :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 니초메 주니-니주니(東京都 台東區 上野 2丁目 12-22). 영업시간 오전 11~ 930. 무휴. 03-3831-0954


 출처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www.hani.co.kr/arti/series/126) | 2008/07/23